신경숙과 창비와 표절, 그리고 이응준

demilemon 2015. 6. 18. 08:07



지난 616일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실린 이응준의 기사. 이제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가 된 신경숙이 일본 우익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표절하였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사실 의혹을 제기하였다기보다는 문학에 대한 신경숙의 범죄를 고발한 글이다.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http://www.huffingtonpost.kr/eungjun-lee/story_b_7583798.html?utm_hp_ref=korea)

 

하지만 순수한 문학인 신경숙, 외딴방에서 난쏘공을 외울 정도로 읽었던 자연인 신경숙의 대답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것 같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신경숙은 표절의혹에 대해 대가의 자세를 견지한다.  모르쇠와, 대가로서 자잘한 문제까지 대응하지 않겠다는 뚝심이다. 

 

신경숙 "논란된 작품은 몰라, 표절 논란에 대응 않겠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100&artid=201506171524441)

 

신경숙이 그렇다하더라도 창비가 그럴 줄은 몰랐다. ‘거룩한 이름을 가진 창비가 신경숙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부서져 내린 것은 작가를 향한 처절한 희생인가 말 그대로 똥칠인가.

 

신경숙 표절 논란고종석 "이건 창비의 타락"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7383)

 

창비가 신경숙을 감싸고 문단이 표절이 아니라해도 감춰지는 것은 아니다. 문학이 여전히 인간의 참됨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신경숙의 글은 도태되어야만 한다. 

 

신경숙과 창비의 성명서에 대한 나, 이응준의 대답

(http://blog.naver.com/junbunker/220392957892)


무너져 내린 신경숙과 문단과 창비 속에서 이응준의 용기와 문장은 빛났다.

 

신경숙과 같은 극소수의 문인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한국문인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버겁고 초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작가임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려는 까닭은 비록 비루한 현실을 헤맬지라도 우리의 문학만큼은 기어코 늠름하고 진실하게 지켜내겠다는 자존심과 신념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