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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08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일요일엔 강제적인 학교 자습도 빠지면서 교회에 갔고

하루 종일 교회에서 살다시피 한 것도 모자라

수요일엔 수요예배, 금요일엔 철야예배에 참석하려 노력했고

점심시간에도 친구들과 근처교회에서 기도모임을 가졌다

성공한 누군가의 간증을 듣고는 공부하기 전에 꼭 성경 한 장을 읽고는 했고,

신앙이 없는 부모님의 간섭은 악한 것이라 여기기도 햇다

실은 친구들이 만나는 것이 좋아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것이지만

아무튼 그 시절의 나는 '독실'했다

그러던 어느 날도 교회에서 기도모임을 하고는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당시는 이상하게도 길거리에 푼돈을 뺏는 깡패들이 많았는데

하필이면 나도 그때 그녀석들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원체 체력이 약하기도 했지만

예닐곱이나 되는 녀석들과 맞설 용기도 힘도 없었기에

무기력하게 맞고 뺏겼다

그렇게 사태가 정리되고 돌아오는 길은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면 안된다고 밀어넣는 마음 한 켠에,

기도회를 하고 돌아오는 내가 이런 불의한 일을 당한다는 건 무언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 이후부터인 것 같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기도한다는 것이

무언가 내 삶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어렴풋한 생각을 갖게되었다

물론 멀리 욥의 얘기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기독교에는 의인의 삶이 그다지 행복하거나 평탄한 것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교회에서 들었던 것은

믿는 자에게 복에 복을 더한다는 얘기들이 대부분이었다

내세 뿐만 아니라 현세의 복을 약속했던 교회, 기독교에 대한 배신감은 작지 않았다

기도 또한 그렇다.

기도의 기본은 기복이다.

기복이 아닌 기도가 도대체 얼마나 될 것인가? 종교 자체가 기복을 바탕으로 생겨나고 유지되는 것 아닌가?

기도의 응답에 대한 수많은 간증이 있다.

하지만 그것의 수십 배, 수백 배에 달하는 기도의 불응답을 나는 열거할 수 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일보다

아무리 간절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세상엔 부지기수다.

기도란 연약한 인간의 자기고백일 뿐 아닌가.

그저 그런 것일 뿐인 기도가

가끔은 정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